‘장애인은 방역 취약계층이 아니다’라는 취지의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발언에 대해 장애인 단체들이 “장애인이 감염병에 취약한 현실을 외면했다”며 일제히 비판 성명을 냈다.
박 장관은 지난 1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독감 무료접종 대상을 보건의료 취약계층인 장애인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의 질의에 “방역 차원에서 볼 때는 장애인을 취약계층이라고 분류하는 것은 오히려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라고 답했다. 박 장관은 ‘4차 추경에 장애인 예산이 없다’는 이 의원의 지적에 “광부나 농부라는 말도 없다”고 했다.
박 장관의 발언이 알려지자 장애인 단체들의 비판 성명이 이어지고 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18일 “코로나19와 발달장애인에 관한 연구보고에 의하면 발달장애인들은 감염병 예방 등에 대한 정보접근이 어려우며, 거주시설 및 그룹홈 등 집합적 생활로 인해 감염병에 취약하다”며 “한 보고서에 의하면 코로나19 확진자 중 장애인의 사망률은 4.5%로 비장애인 사례(2.7%)에 비해 높다”고 밝혔다.
장애인 단체들은 또 지난 6월 복지부가 코로나19에 장애인들이 더 취약하다면서 관련 매뉴얼까지 만든 사실을 지적했다. 코로나19 발생 5개월만에 나와 ‘뒷북’ 비판이 제기됐던 이 매뉴얼을 보면 복지부는 ‘의사소통 제약’ ‘이동제약’ ‘감염 취약’ ‘밀접돌봄’ ‘집단활동’ 등 장애인들의 취약 특성이 분석돼 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실효성이 없는데도 자화자찬하며 만든 매뉴얼에도 장애인은 감염병에 더욱 취약한 집단이라고 규정돼 있다”면서 “박 장관은 어떤 근거로 장애인이 방역 차원의 취약계층이 아니라고 말하는가”라고 말했다.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도 지난 17일 성명을 통해 장애인들이 비장애인 중심의 방역체계에서 소외돼 다양한 위험에 노출되는 현실을 박 장관이 외면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코로나19 사태 초기 많은 장애인이 무방비 상태에 놓였다.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게 못해 사각지대에 놓이고 고립된 이들도 있었다”면서 “질병 정보에도 접근하기 힘들고, 감염 의심이 들어도 상담받을 곳이 없으며, 재난 문자 내용 등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없는 이들이 많았다. 이렇게 위험에 노출되는 경우가 방역취약계층이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박 장관이 장애인 예산 부재를 묻는 질문에 ‘광부나 농부라는 말도 없다’고 말한 점에 대해서도 우려가 제기됐다. 한국지체장애인협회는 박 장관이 ‘광부와 농부도 없다’고 한 데 대해 “장애인을 마치 선택이 가능한 직업군과 비교하는 등, 장애인에 대한 몰이해 수준을 여실히 보여줬다”며 “보건복지부 장관의 기본적인 철학과 사고가 과연 어떻게 장애인복지정책을 이끌어 갈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한국지체장애인협회는 정부가 장애인 관련 시설을 코로나19 초기부터 폐쇄한 것도 지적했다. 장애인 돌봄을 가족에게 부담하게 했고, 장애인의 경제적 활동을 크게 위축시켰다는 비판이다. 한국지체장애인협회는 “K-방역은 철저한 확진자 추적으로 코로나19 확산을 막아낸 점에선 우수한 평가를 받을 만하다”면서도 “그러나 취약계층인 장애인을 외면한 정책이었기에 절대 모범방안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정다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실장은 “장애인은 의료접근성도 취약하고, 지원인력이나 지원기관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거리두기로 인해 어려움에 빠질 수밖에 없다”며 “안 그래도 취약하던 복지기반이 코로나19때 갑자기 무너졌다. 돌봄서비스를 받는 이들에 대한 사회제도적 대책을 갖추고 공적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