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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일보] <심층분석> 지적장애 등 구성원 결합 '인지취약가구’…사회복지 사각지대에 고립
작성일 : 2026-04-13 조회수 : 6
<심층분석> 

지적장애 등 구성원 결합 '인지취약가구’…사회복지 사각지대에 고립

사회안전망·복지에서 가장 위태로운 고위험군
고립 속 일상화된 폭력과 착취




인지능력이 부족해 스스로 도움을 청하지 못하는 ‘인지취약가구’는 사회복지 사각지대 중에서도 가장 깊고 어두운 곳에 고립돼 있다.

국가 사회복지 시스템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주변에는 사회안전망의 그물에 포착되지 않은 채 힘겨운 하루하루를 버티는 가구들이 존재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인지능력이 낮아 스스로를 보호하거나 지원을 요청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인지취약가구(지적장애 의심 등 다장애 의심가구 포함)’는 복지 사각지대 중에서도 가장 깊고 어두운 곳에 놓여 있다. 전국적으로 충격을 가져온 ‘신천 캐리어 사건’도 이러한 범주라고 볼 수 있다.

본보는 학계 및 현장 전문가들의 분석과 구체적인 통계를 통해, 이들이 겪는 고립과 붕괴의 실태를 파헤치고 제도적 개선방안을 모색해 봤다.

◆ "가족이 가해자"… 고립 속 일상화된 폭력과 착취

인지능력이 부족한 구성원들로만 이뤄진 가구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위태로운 고위험군이다. 이동석 대구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겸 대학원 장애학과 교수는 이런 가구가 겪는 핵심 위기로 '사회적 고립'을 지목했다. 이 교수는 “일반 가구는 마찰이 생겨도 사회생활을 하며 감정을 식히는 ‘쿨링(cooling) 효과’가 존재하지만, 고립된 지적·인지 취약가구는 사소한 마찰이 쉽게 폭력으로 번지고 저항할 힘이 없는 피해자가 이를 감내하며 폭력이 만성화된다"고 진단했다.

전국여성장애인폭력피해지원상담소 및 보호시설협의회(전여상보협)의 최근 3년(2022~2024년)간 통계는 이 고립된 밀실의 참혹함을 명백히 증명한다. 장애인 가정폭력은 부모나 자녀 등 '가족원'이 가해자인 비율이 49.2%로, 비장애인(3.3%)보다 8배나 높았다. 비장애인은 정서적 폭력이 신체적 폭력보다 5배 가량 많지만, 장애 여성은 정서적 학대(47.7%)와 신체적 폭력(41.0%) 비율이 엇비슷해 심각한 물리적 폭력에 일상적으로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안순애 대구여성장애인통합상담소 상담팀장은 “최근 미등록 장애 추정 어머니와 지적장애 미혼모 딸, 손녀가 함께 사는 가구를 지원했다”며 “그런데 어머니가 딸의 수급비를 착취하고, 그 스트레스로 딸은 다시 아이를 학대하는 등 3대에 걸친 폭력이 발견되기도 했다”며 참담한 실태를 전했다.

◆ "신청해야 돕는 복지"… 철저히 숨겨진 '투명인간' 가구

이런 참담한 비극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근본 원인은 다장애 의심 가구를 발굴해 내지 못하는 현행 제도의 맹점에 있다. 본인이 직접 신청해야 돕는 ‘신청주의’ 제도로는 스스로 피해를 인지하지 못하는 이들을 구해낼 수가 없다. 여성가족부의 2022년 가정폭력 실태조사 응답자 중 장애인은 단 1.6%에 불과할 정도로 공식 행정망에서조차 소외된 것이 현실이다.

단전·단수 등 경제적 지표에만 의존하는 발굴 시스템도 한계가 뚜렷하다. 이동석 교수는 “기초생활수급비나 장애인 연금을 받아 공과금만 내면 행정망의 위기 데이터에는 잡히지 않는다”며 “사회활동 없이 집에만 고립돼 있다면, 학대가 발생할 확률이 80~90%에 달한다”고 경고했다.

◆ 놓쳐버린 징후와 착취의 늪…법적 개입의 한계

어렵게 위험 징후가 포착되더라도 턱없이 부족한 법적 권한이 구조의 골든타임을 번번이 놓치게 만든다. 인지취약가구 구성원의 ‘가출’은 특히 위험한 신호다. 이 교수는 “인지취약가구의 가출은 가장 강력한 ‘위험 징후’임에도, 치안 현장에서는 단순 해프닝으로 끝내는 경우가 많다”며 “치안망에 징후가 포착됐을 때 즉시 전문기관으로 연계하도록 매뉴얼을 고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치안과 복지망이 단절된 사이 집을 나선 장애 여성들은 외부의 끔찍한 착취로 내몰린다. 이주영 대구여성장애인통합상담소장은 “가출한 장애여성의 취약성을 이용해 접근하는 가해자에게 ‘그루밍(길들이기)’에 의한 성착취 피해를 입은 내담자들을 흔히 마주한다”고 전했다.

더 뼈아픈 것은 제도의 무력함이다. 이 소장은“가해자가 장애가 있는 피해자를 통제상태에 두고 외부와의 소통을 차단한다면 이 상황을무력화할 방법이 없다. 착취적 관계가 의심된다고 하더라도 성인인 장애인 피해자가 개입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면 공권력도, 상담소도 더 이상 진실에 다가가지 못하고 돌아서야만 하는 답답한 한계가 존재한다“고 토로했다.

◆“피할 곳이 없다”…다시 가해자에게 돌아가는 현실

설령 고립의 문을 열고, 피해자를 구출해 내더라도 이들을 보호할 인프라는 처참한 수준이다. 이주영 소장은 “당장 폭력을 피해 몸을 숨길 수 있는 여성장애인 전용 쉼터는 전국에 단 2곳뿐”이라고 지적했다.

전여상보협의 최근 3년(2022~2024년)간 통계에 따르면, 어렵게 비장애인 중심의 보호시설에 입소해도 낯선 공동생활과 투약 관리의 어려움 등 시스템의 한계 탓에 절반 이상(50.9%)이 적응하지 못하고 중도에 퇴소한다. 더욱 뼈아픈 점은 기초생활수급비 중단, 가족의 돌봄 압박, 자립 인프라 부족 등에 떠밀려 퇴소자의 33.4%가 가해자가 있는 ‘원가정’으로 다시 되돌아간다는 사실이다.

◆‘가구 단위’ 전담체계와 맞춤형 인프라 확충 시급해

전문가들은 이러한 비극을 끊어내기 위해 복지철학의 근본적인 변화와 인프라 확충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동석 교수는 “경제적 지표만 볼 것이 아니라, 공공서비스 이용 없이 낮시간대에 완전히 고립돼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며 “개인별 서비스가 아닌, 가구 전체를 묶어 밀착 모니터링하는 ‘가구 중심 복지정책’의 신설과 발달장애인지원센터의 사각지대 전담 컨트롤타워 역할 확대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현장의 목소리 역시 사후 개입을 넘어선 ‘맞춤형 인프라’의 절실함에 닿아 있다. 이주영 소장은 “단기적이고 파편적인 개입이 아니라, 비장애인 중심의 현행 시스템을 탈피해 장애 특성을 깊이 이해하고 즉각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전문 인프라와 장기적인 연계망 구축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립된 채 무너져 가는 인지취약가구들. 통계마저 외면한 이들을 향해, 이제는 우리 사회가 촘촘한 시스템과 안전망으로 응답해야 할 과제를 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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